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페인 제국 (문단 편집) === 몰락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pain_in_1898.png|width=800]] [[나폴레옹]]이 등장한 시기에 [[카를로스 4세]]는 계속된 실정으로 결국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고 그의 아들이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였다. 하지만 곧바로 나폴레옹은 자기의 친형을 [[호세 1세]]로 즉위시키고 [[페르난도 7세]]를 쫓아내어 중앙정부는 프랑스의 손에 넘어간다. 한편 중앙의 상황과 달리 지방에서는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모습이 보였다. 프랑스군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약탈과 강간을 일삼자 지방의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고 [[이베리아 반도 전쟁]]이 일어난다. 특히 여성들까지 전쟁에 참여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결국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철수하며 페르난도 왕자가 국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돌아왔고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면서 [[보르본 왕조]]가 복구되었다. 하지만 강대했던 스페인 해군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의 대패로 사실상 붕괴되었고, 본토 역시 프랑스에 맞선 수 년간의 게릴라 항쟁으로 인해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이로써 스페인은 식민지들의 소요에 개입할 수 있는 여력을 사실상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새로이 즉위한 국왕들은 국민들의 기대와 달리 자기 왕위에만 관심을 가지고 중남미에서 일어나는 반란들을 진압하지 못하여 하나둘씩 독립시키며 기대를 좌절로 만들었고 내부의 문제들도 해결하지 못해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그 뒤를 이은 왕들도 정치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점점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스페인 전열함대 또한 나폴레옹 전쟁에서 입은 끔찍한 피해를 자력으로 복구하지 못하고 [[러시아 제국]]의 74문 [[전열함]] 다섯 척을 [[중고]]로 구매하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19세기 말인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하였다. 당시 쿠바에서는 쿠바 독립세력이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대항하여 [[https://ko.m.wikipedia.org/wiki/10년_전쟁|10년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이에 미국은 쿠바와 필리핀의 독립 운동을 도와 스페인의 만행으로부터 구해주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다. 결국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괌]], [[쿠바]], [[필리핀]], [[푸에르토 리코]], [[북마리아나 제도]]를 모두 상실했고 남은 서태평양의 섬들은 따로 유지시키기에는 비용 부담이 커서 독일에게 매각했다. 이때 스페인이 본국의 함대를 쿠바와 필리핀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영국이 화해를 중재하자 곧 포기하고 미국에 영토를 내줘야 했다. 유럽국가들도 스페인보다 미국의 손을 들어준 상황이었고 세계열강에서 스페인이 빠지고 본격적으로 미국이 세계에 등장한다. 이후로 건진 건 [[서사하라]]와 [[적도 기니]], [[스페인령 모로코]]가 있는 아프리카 영토 뿐이었다. 당대 강대국인 [[영국]]이나 [[프랑스]]는 물론이고, 심지어 17세기까지 스페인의 속령에 불과했던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보유한 식민지보다도 더 작은 영토를 가진 상태가 되었다. [[스페인령 모로코]]의 경우 스페인의 주요 식민지 목표였으나 프랑스의 개입으로 완전한 통치는 못하고 프랑스와 분할통치하였다.[* [[모로코 사건]] 참조.] 이때 프랑스를 견제하는 [[독일]]과 [[영국]] 덕에 그나마 차지한 것이었고, 모로코 북부를 차지했다. 스페인 본토와의 연계성도 높았고 경제성도 좋은 곳이었다. [[파일:08F404DF-BED1-4FCB-B238-57CA462A6380.png]] [[스페인령 모로코]](분홍색 부분) [[스페인령 사하라]](붉은색 부분) 한편 [[스페인령 모로코]]의 리프(Rif)지방에는 고급 광물이 풍부하여 노천광산 채굴을 통해 쉽게 추출할 수 있었다. 1911년~1914년 사이 [[세우타]]-테투안을 잇는 [[협궤]]철도가 건설되었다. 스페인 정부는 사업가 호라치오 에체베리에타(Don Horacio Echevarrieta)[* 스페인의 백만장자이자 기업인, 광산업자, 부동산사업자, 은행가, 정치인으로 [[이베리아 항공]]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모로코에서 광산을 경영하면서 리프전쟁의 스페인 포로를 구해오기도 했다. 부동산에서 일가견이 있어서 [[마드리드]]와 [[빌바오]], [[바르셀로나]]의 건축사업에 참여하기도 했고, 광산업으로 벌은 돈을 관광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급진 자유주의 성향 정치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반대로 2차대전 기간 중에는 [[빌헬름 카나리스]]와의 인연으로 함께 활동하기도 한 복잡한 인물이다.]를 내세워 광산을 경영했는데 이게 원주민과의 마찰을 불러 리프전쟁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아무튼 에체베리에타는 연간 100만톤의 철광석을 채굴하여 본국으로 실어날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